글을 퍼블리싱하기까지 걸리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서, 글을 훨씬 더 러프하게 쓰기로 했다. 최근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재밌게 읽고 있는데, 더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남기기 위한 글은 목차를 정교하게 설계하기보다는 불릿 포인트로 러프하게 쓰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리더의 적성
- 처음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할 때부터 팀장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개발 팀장을 단순히 그 팀에서 개발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발자로서 연봉을 더 많이 받고 인정 받기 위한 가장 쉬운 지표가 개발 팀장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개발 팀장이 되자!라는 목표를 잡았었다.
- 작게나마 처음 리더를 하게 된 것은 VCNC 시절이었다. 당시 팀원이 2명인지 1명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작은 파트의 리더를 맡았는데, 해보니까 재밌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답답함이 줄어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는 아니고, 내 생각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일을 할 수 있어서 그렇다.
- 라포랩스에서는 거의 2년 반 동안 리더 역할을 수행했다. 서버 플랫폼 팀 리더를 한 1년 반, 커머스 플랫폼 팀 리더를 한 1년 반 정도 했다(중간에 겸직). 정신을 차리고 보니 커리어의 절반 가까이를 리더로 지냈다.
- 이렇게 수년간 리더를 하고 나니, 당연하게도 ‘개발 팀장은 그 팀에서 개발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리더는 IC와는 꽤 다른 역량을 요구하는, 개발자나 PM/PO와 같은 하나의 ‘역할’일 뿐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앞선 글에 자세히 적었다.
- 리더 직군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갔긴 하지만, 리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 지금 이해하고 있는 리더의 역할 역시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덜 답답하게 일할 수 있는 직군이라고 생각한다.
- 개인적으로 리더가 내 적성에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리더의 적성이란 무엇인가?
- 나는 관심사가 넓지 않다. 개발자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개발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을 떠올려보면 개발을 더 잘하는 데는 관심이 그리 많지 않다. 대신 일이 되게 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오는 성취감을 즐겼다.
- 개발자 중에 이런 성향은 많지 않다. 개발자는 스페셜리스트 직군이다. 그래서 보통 개발자로서 두각을 보이는 사람일수록 기술 자체를 좋아할 확률이 높고, 보통 개발 외적인 회사 일에 관심도가 그리 높지 않다. 다들 IC로 남아서 개발을 하고 싶어 한다.
- 회사의 입장을 살펴보자. 회사는 개발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게 말하면 성과를 잘 내는 사람 혹은 나쁘게 말하면 회사 말 잘 듣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개발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할 수 있지만, 개발을 잘한다고 무조건 성과를 잘 내는 것은 아니다. 이 둘은 본질적으로 아주 다르다. 이 다름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기에 이를 스스로 깨닫기는 쉽지 않은 일이며, 이 다름을 이해한다고 해서 개발보다 성과에 집중하는 걸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그렇기 때문에 개발자 중에서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보이면 회사에서 옳다구나 하면서 리더 역할을 맡기려고 한다. 스페셜리스트 직군에서 좋은 리더, 혹은 좋은 제너럴리스트는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더 만능론
- 최근 리더 만능론에 빠졌다. 프로젝트가 자꾸 실패한다고? 리더가 못해서 그렇다. 자꾸 누락되는 일이 발생한다고? 리더가 안 챙겨서 그렇다. 조직 문화가 이상하다고? 리더가 잘못 행동해서 그렇다. 팀원의 역량이 잘 안 늘어난다고? 리더가 매니징을 못해서 그렇다.
- 왜 리더 만능론이 옳다고 생각하냐면, 결국은 제품팀은 사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 사람이 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애초에 JD에 맞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채용의 책임자는? 리더다. 입사한 뒤 팀원의 만족도 및 행복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사, 즉 리더다. 사람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향상시켜줄 좋은 선배, 좋은 리더를 찾는다. 그러므로 직원의 근속연수 역시 리더의 책임이다. 조직의 분위기 및 문화는 리더가 내뿜는 분위기나 하는 행동의 평균으로 잡히므로, 조직 문화 역시 리더의 책임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제품팀에서 인재와 문화 말고 중요한 게 뭐가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 그래서 조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리더에게 높은 기대치와 많은 책임을 부여하고, 리더를 매우 갈궈야 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리더가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이다.
-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좋은 리더를 잘 육성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라포랩스에서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리더’라는 역할로서 피드백을 많이 받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피드백을 하려면 기대치가 있어야 하는데, 기대치 설정이 잘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 이럴 거라고 생각한다. 앵간히 큰 회사가 아니면 리더를 육성할 리소스가 없는 게 당연하다. 이런 측면에서도 회사는 좋은 인재를 뽑아야 한다.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고, 스스로 피드백하여 성장하고,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좋은 인재를 채용해야 좋은 리더가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