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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 회고록] 리더는 무엇을 하는 직군인가?

2025-08-04


리더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제너럴리스트이다

첫 회사인 VCNC에서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개발이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 한번 제출하고 치우는 학교 과제와는 달리, 실제 제품은 수년 혹은 수십년의 생명주기를 가질 뿐만 아니라 유저의 수도 훨씬 많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때는 훨씬 다양한 기능적/비기능적 요구사항이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는 데는 보통 1~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체화하면 보통 주니어 타이틀을 떼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IC로서 혼자서 업무를 오롯이 할 수 있게 되면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한 일이 주어지는데, 이렇게 규모가 큰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혼자 일을 잘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 한 명이 IC로서 잘해서 낼 수 있는 임팩트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다른 개발자에 비해 2배의 임팩트를 낼 수는 있다. 하지만 3배는 쉽지 않을 것이다. 5배? 미친듯이 어려울 것이다. 10배? 웬만해선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애초에 일정 자체가 혼자 개발하는 속도로는 지키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협업을 하고, 팀을 꾸려서 함께 일을 한다.

라포랩스에서 리더 역할을 2년 정도 하면서 느낀 것은, 여러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일을 ‘잘’하는 것이 정말,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팀으로서 일을 잘하는 것이 IC로서 일을 잘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데, 생산성이 낮은 원인이 훨씬 더 복잡하고 동적이기 때문이다. 팀의 목표와 연관이 적은 일을 하거나, 협업 도중 블로커가 생겨서 붕 뜨는 팀원이 생기거나, 팀원간의 트러블로 인해 감정이 상해서 협업을 거부하거나,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는 팀원이 생기는 등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팀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가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의 역량이라고 본다. 팀은 뛰어난 리더를 필요로 한다.

팀의 리더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역할은 회사의 인적 리소스를 활용해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리더는 일이 되게 하는 역할이다. 근데 이 ‘일이 되게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상당히 모호하다. 개발자면 개발을 하고, 디자이너면 디자인을 하는 등 IC에게는 비교적 명확한 직무적 role을 기대한다. 이와 달리 리더는 팀이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래서 리더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

제너럴리스트 직군이 보통 그렇듯, 리더의 역량 수준은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IC로서 역량을 인정 받아 리더를 처음 맡게 되면, 기존에 IC로 일하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의 모호한 일을 해야 해서 상당히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작은 회사일수록 리더에 대한 온보딩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이 더 커진다. 하지만 2년 넘게 리더로 일을 해보니, 리더 역시 IC처럼 꽤나 기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더의 최우선 과제 - 1. 팀의 목표를 설정하기

리더가 해야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단 하나만 뽑으라고 한다면, ‘팀의 목표를 설정하기’를 뽑겠다.

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가? 팀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많은 아웃풋을 만들어 내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아웃풋이 회사나 팀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 팀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오히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 그 팀을 유지하기 위한 인건비가 낭비됐고, 그 아웃풋을 만드는데 걸린 기간만큼 시간이 낭비됐고, 쓸모 없는 아웃풋으로 인해 제품의 유지보수 비용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팀의 생산성을 벡터라고 생각한다면, 벡터의 길이가 아무리 길어도 올바른 방향을 향하지 않으면 목표에 다가갈 수 없고, 오히려 더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여 팀이 노력할 방향을 정하는 것이 리더가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좋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적절치 못한 목표를 세워서 수 개월을 낭비한 팀을 많이 봤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팀의 목표를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잡을지는 상당 부분이 리더의 역량에 달려 있고, 이 역량은 리더마다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목표의 조건을 몇 가지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 회사의 현재 맥락에 맞고, 회사의 비즈니스에 장/단기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 회사의 조직도 상 팀에 기대되는 역할에 부합해야 한다. (조직 내 중복된 노력 방지)
  • 너무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적절한, 도전적인 난이도여야 한다.
  • 팀원들이 납득하고 동기부여될 만한 목표여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좋은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역량이 필요하다.

  • 회사의 맥락을 잘 파악하는 정보 수집력

    회사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루트는 전사 타운홀 미팅이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회사의 각 팀이 지금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회사 메신저도 정보를 수집하기에 상당히 적절한 창구이다. 이는 회사 메신저를 통한 공개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문화가 잘 자리 잡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요하다면 사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인터뷰나 커피챗을 진행할 수도 있다. 특히 인터널 제품을 개발하는 팀에서는 유저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적으로 여러 구성원과 유대 관계나 신뢰를 쌓아놓으면 큰 도움이 된다.

  • 회사의 맥락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문제 발굴력

    전사 타운홀 미팅, 회사 메신저, 커피챗, 유저 인터뷰 등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비즈니스 기회를 전달받을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겪는 문제와 해당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리더는 관찰된 표면적인 문제를 분석하여 기저에 깔린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표면적인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면 근시일 내에 비슷한 문제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발굴한 문제에 대해 뛰어난 해결책을 상상해낼 수 있는 문제 해결력

    팀이 풀어야 하는 문제를 잘 정의했으면 그 다음은 문제를 잘 해결할 차례다. 정의한 문제를 잘 분해하고, 팀의 역량과 현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한 이후, 분해된 문제의 각 부분에 대해 단순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 도전적인 목표를 잡을 수 있는 몰입 수준과 위닝 멘탈리티

    1950년대까지만 해도 1마일을 4분 이내에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육상 선수가 최초로 1954년에 1마일 4분 벽을 깼다. 그 이후로 1년 내에 4분 이내에 1마일을 뛰는 선수가 37명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외에도 파킨슨의 법칙의 예처럼, 인간의 능력과 생산성은 심리적인 요인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심리적인 요소가 인간의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은 팀이 도전적인 목표를 잡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팀의 생산성은 팀, 특히 그 팀의 리더가 상상하는 수준까지만 높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리더는 ‘그건 안 될 것 같은데…’라는 마인드 대신 강한 위닝 멘탈리티를 가지고, 충분히 도전적인 목표를 잡아서 팀의 생산성을 한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역량을 반드시 리더가 직접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이중 부족한 역량이 있다면 이를 메꿀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하는 것은 리더의 책임이다.


리더의 최우선 과제 - 2. 팀의 목표 달성률을 추적하기

팀의 목표를 설정했다면,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팀이 목표를 잘 달성하고 있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목표를 세운다고 해서 팀의 모든 노력이 자동적으로 정확히 목표를 향하지는 않는다. 실제 업무 환경은 무균실이나 온실처럼 이상적이지 않고, 보통 매우 많은 컨텍스트가 휘몰아친다. 그 속에서 정신 없이 일을 하다 보면 팀이 세운 원래 목표는 생각보다 쉽게 잊혀진다. 팀의 목표보다는 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작한 태스크를 처리하는 도중 맞닥뜨린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매몰되기 쉽다. 보통 이런 문제는 팀의 원래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시간을 갈아넣고, 그 문제를 엄밀하게 해결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적당히 뭉개고 빠르게 넘어가는 것이 더 적절하고 효율적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트레이드 오프를 고려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팀의 목표 달성률을 추적하는 방법을 마련하고 이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 및 회고하면 팀이 본래의 궁극적인 목표를 망각하지 않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목표 달성률을 추적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목표가 어떤 형태로 세워졌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KPI / KR과 관련된 지표 대시보드를 구성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epic 작업의 sub task 티켓을 쪼개놓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든 간에 자신이 올바른 방향과 올바른 속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리더와 팀원이 스스로 쉽고 빠르게 인지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