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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 회고록] 스톡옵션 - 숨겨두고 까먹은 비상금

2025-07-24

지난번 이직 때 회사 선택의 주요 기준 중 하나는 ‘스톡옵션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는 회사’였다. 내가 입사했던 2022년에 라포랩스는 ‘전 직원 스톡옵션’이라는 문구를 앞세워 채용을 홍보했었고, 덕분에 스톡옵션을 받고 일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스톡옵션이 회사 생활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잘 느껴볼 수 있었다. 스톡옵션에 대한 감상을 요약하자면, 스톡옵션은 중요한 금전적 보상이지만 핵심 동기부여 요소는 아니다.

2020년 코로나 시대 이후 여러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금리가 높아지고, 투자 시장이 얼어붙었다. 이에 맞춰서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과 기업가치 산정 방식 역시 대폭 수정되었다. 기존에는 성장성만으로도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2020년대에 들어서는 성장성보다 수익성이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는 스타트업에 상당히 불리한 조건인데, 스타트업의 주요 전략 중 하나가 적은 고정비와 규모의 경제를 통해 흑자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투자사는 ‘10배 성장하면 흑자 전환하고 이익 많이 낼 수 있어요~’라는 플랜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는 마진율이 낮은 수수료 장사를 하는 이커머스 회사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했고, 실제로 2020년대 들어서 많은 이커머스 회사가 스러져갔다. 비록 라포랩스는 뛰어난 경영 능력을 바탕으로 이러한 위기를 잘 버티고 성장했지만,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데다가 티메프 사태 등 이커머스 판에 악재가 계속 터지는 상황에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니, 스톡옵션은 더 이상 금전적인 성공을 바라고 스타트업에 합류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없었다. 스톡옵션은 예측 가능한, 그저 그런 수준의 보너스로 전락했다. 그것도 수익 실현이 굉장히 귀찮고 까다로운. 심지어 스톡옵션의 구조가 좋지 않다면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크래프톤의 예시처럼 오히려 손실을 볼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스톡옵션을 지급하더라도 기업가치가 상승하지 않으면 동기부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느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연봉 인상률을 높게 쳐주거나 보너스를 많이 주는 것이 회사가 내 성과를 잘 인정해준다고 느끼는 데 더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스톡옵션에 대한 또 다른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받는 스톡옵션의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회사는 냉정하고 정확하게 직원의 가치를 평가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해당 구성원이 낼 수 있는 비즈니스 임팩트에 맞는 수준의 스톡옵션을 지급한다. 즉, 앵간한 리더급으로 채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생각보다 스톡옵션 계약 금액이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기업가치가 상승하더라도 생각보다 삶이 그리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충분히 성장을 하지 못하고 망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스톡옵션의 기댓값은 성과급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그래서 스톡옵션은 동기부여의 도구보다는 채용의 도구에 가까운 것 같다. 정말 초기에 합류하지 않는 한 액수가 크기 어렵고, 회사가 장기간 폭풍성장하지 않는 한 받은 스톡옵션의 가치는 생각보다 그리 커지지 않는다. 그래서 스톡옵션이 동기의 중심에 있으면 금방 흥미를 잃기 쉽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스톡옵션에는 큰 기대를 걸기보다는 그냥 어디 숨겨두고 까먹은 비상금처럼 취급하고, 훌륭한 동료들과 일하는 경험과 개인의 성장 등 스타트업에서만 얻을 수 있는 다른 가치를 바라보고 이직을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금전적인 업사이드가 가장 중요하다면 차라리 스톡옵션을 노리기보다 창업이 낫다고 생각한다. 정말 의미 있는 수준의 스톡옵션을 받기 위해서는 초기 스타트업에 주요 포지션으로 합류해서 정말 빡세게 굴러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렇게 구를 바에는 차라리 내 거 하면서 고생하는 게 낫지 않아?’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데, 실제로 내가 창업을 결정하게 된 소소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회사에서 커리어를 더 쌓으려면 그룹 리드 수준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는데, 그룹 리드가 된 뒤에 할 고생을 상상해보니 차라리 내 걸 하면서 고생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스톡옵션에 기대를 걸고 이직할 것이라면, 시장 상황을 잘 판단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받은 스톡옵션이 얼마나 가치 있을지는 내가 어떤 회사에 합류하느냐보다는 투자 시장이 어떤지에 좀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회사가 지표상 성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기업가치를 상품의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투자자라는 수요가 없는 한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금리가 낮아 투자 시장이 과열된 시점에는 스톡옵션의 타율이 더 올라갈 수 있고, 역으로 투자 시장이 얼어 붙으면 연봉이나 성과급 등의 즉각적인 현금성 보상이 높은 회사를 고르는 것이 더 유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