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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2020-05-09

#1. 오리지널리티

지난 주, 나는 자기소개 페이지를 새롭게 만들었다. 가장 먼저 작성한 건 페이지 맨 위의 나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세 문장이었다. 내 이름. 노력과 열정을 사랑하는 개발자. 피아노와 독서,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 나를 세 문장으로 줄여서 이야기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오리지널리티”라는 단어다.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죽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 오리지널리티는 뭐지? 나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사람인가?

나는 타인을 따라하고, 배우고, 흡수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타인을 “베끼다”보니 든 생각은, 결국 나는 내 인생을 견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흥미나 가치관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타인의 능력은 분석해서 베끼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그 사람이 그런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게 만든 타인의 흥미와 가치관은 베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만큼 잘하는 건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는 건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내 면모를 컴플렉스로 여기고 있었다.

요즘은 이런 특성 자체가 내 오리지널리티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고 더 잘하고자 하는 강력한 향상심. 무엇이든 빠르게 배우고 능숙해지는 사람. 뚜렷한 취향 없이 많은 것에 쉽게 불타오르고 쉽게 사그라들고. 그렇게 타고 남은 재가 점점 쌓여가고, 그 와중에 사그라들지 않고 꾸준히 타오르는 무언가가 마음 속에 남는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바로 나이고, 이런 식으로 내 오리지널리티를 쌓아가는 스타일 역시 내 오리지널리티 중 하나이다.

향상심에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뒤따른다. 대학교를 떠나고 성적표를 받지 않게 되자, 나는 나에 대한 성적표를 스스로 만들어서 부여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걸 잘하고, 이런 건 못하고, 이건 내 기준에 한참 모자라. 평가 제도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대학교 때와 다른 점은 평가의 항목을 내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이다. 나는 어플리케이션 운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사람들에게 더 친절해지고 싶어. 경제 관련 지식을 더 쌓아야 할 것 같아. 성적표의 항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각 항목의 점수를 올리면서 점점 더 내가 원하는 내가 되어간다.

스스로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강요하고, 모든 걸 잘해내고 싶은 철인이 되고 싶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나는 순수한 의미의 낭만주의자인 것이다.

#2. 좋은 질문, 충분한 고민

좋은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해 충분히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낭만을 그저 낭만으로 남겨두지 않고 실현하는 간단하고도 중요한 방법이다.

보통 현실에 대한 불만족은 두루뭉실하고 애매모호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요즘 살이 너무 많이 쪄서 다이어트를 해야할 것 같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다. 회사에서 일을 더 잘하고 싶다. 이러한 불만의 감정은 종종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보통 한탄에서 끝이 난다. 이대로 살아도 크게 불편한 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불만은 굳이 해결하지 않아도 사는 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노력을 기울여서 이를 개선하면 삶이 조금 더 나아지고 즐거워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방 청소 같은 것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고되지만, 막상 하면 생각보다 즐겁고 뿌듯한 일.

불만 중 다수는 해소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지 끌어안고 있는 문제가 너무 많아서, 한탄하는 것이 습관이 돼서,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상황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뿐이다. 하지만 익숙함의 고리를 끊고 문제를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반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점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습관이 된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결할 문제를 골라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고민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는 결코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쉽지도 않다. 그저 한탄에서 멈추는 이유는 문제가 잘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충분히 파헤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집중해야 할 문제를 몇 개 골랐으면, 그 다음으로 필요한 건 반복적인 질문을 통해 문제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다. 내가 얼마만큼 부자가 되고 싶지? 그만큼의 돈을 번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그 돈을 벌었지? (만약 주식으로 벌었다면) 내가 주식을 투자하기 위해 부족한 게 무엇이지? (창업으로 돈을 벌었다면) 창업가 중 몇 퍼센트나 저만큼의 자산을 쌓았지? 다른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창업을 시작하게 됐지? 이런 식으로 문제를 지금 내 눈높이에 맞는 현실적인 수준으로 구체화시킨다.

이제 남은 것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 고민하고, 차근차근 노력을 기울이는 것 뿐이다. 충분히 구체화된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사람이 같은 문제를 겪었고, 우리를 도와줄 많은 정보가 이미 우리 근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한탄하는 습관을 버리고, 대신 질문을 멈추지 않고 충분히 고민하는 습관을 들이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3. 완벽한 행복

최근 내가 해결하고 있는 문제는 두 가지다. 혼자서 어플리케이션의 백엔드를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주식 투자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전자는 2019년 회고를 하면서 갖게 된 개발자로서의 중단기 목표이고, 후자는 슬슬 저축이 쌓여간다는 점과 투자자로서 세계적인 경제 위기라는 상황에 대한 경험치를 최대한 쌓아놔야 한다는 생각이 겹쳐져서 새롭게 떠오른 문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ODO list를 만들고, 위에서부터 하나씩 쳐내고 있다.

요즘 다른 사람한테 내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샐러드만 먹고 사는 듯한 삶”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퇴근하면 한 시간 좀 넘게 개발 공부하고, 30분 주식 책 읽고, 30분 피아노 치고. 주말에는 스터디하고, 집에 들어오면 피아노 치거나 책 읽고. 꾸준히 운동하고. 어떻게 보면 참 팍팍한 삶이다.

이런 팍팍한 삶이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즐겁고, 그로 인해 내 삶이 달라지는 게 체감되는 순간이 행복하다. 내 오리지널리티와 내 삶이 잘 align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행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두 개의 싱크를 맞추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