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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4.

2019-08-25

유튜브로 노래를 틀어놓고 운동을 하던 중, 우원재의 <시차>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다지 힙합을 좋아하지 않아서 다음 노래로 바꾸려고 했는데, 그 영상은 단순히 노래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사로 만든 타이포그래피 영상이었다. 그 영상이 마음에 들었기에, 영상에서 휙휙 지나가는 가사를 따라 읽던 도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2년 전만 해도 나는 밥먹듯이 밤을 새곤 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밤을 새면서까지 노력하지 않게 됐을까?

2017년은 내게 노력과 바쁨의 상징과 같은 시기로, 정말 지옥 같이 힘들었다. 시작은 초조함이였다. 개발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배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경험을 매꾸기 위해 인턴이든 동아리든 닥치는 대로 열심히 시도하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밥을 먹으면서도 개발 관련 글을 찾아보곤 했다. 여기에 전산과의 살인적인 로드가 더해지니, 아침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과정에 즐거움이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 팀원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2018년 가을이 되어 나는 학교를 벗어나게 됐다. 덕분에 시간이라는 자유를 얻고,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새로운 ‘나’를 찾을 수 있었다.

퇴근은 나와 개발 업무를 단절시켰다. 내게는 퇴근한 뒤까지 개발을 해야 할 동기가 없었다. 개발은 사실 나한테 그렇게까지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대신, 지금까지 줄곧 시간이 없어서 배우지 못했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운동도 하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거의 매일 꼬박꼬박 하게 되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니 책도 읽기 시작했는데, 꽤나 재밌었다. 어느새 평일에는 퇴근 후에 개발 공부를 따로 하지 않고, 취미 활동만 하게 되었다.

나는 개발 그 자체보다, 동아리 활동이나 개발 일을 통해 사람들과 밀도있게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타깝게도, 이를 깨달은 시점에는 이미 나는 서울로 올라왔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전에 남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부지런히 대전으로 내려가서 친구들을 보고 있다. 낯가림이 심해 힘들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나눠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나는 뒤쳐지는 것이 무서웠기에, 모든 분야에서 완벽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 밖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 천지였다. 그래도,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에게는 장점과 단점이 있을 수 밖에 없으며, 단점을 보완하여 완벽을 추구하기 보다는 장점을 갈고닦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밤을 새면서까지 열정을 쏟을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 내게 다시 그런 일이 찾아오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없는 삶이 반드시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정말 다양한 관심사를 보았다. 세상에는 내 관심을 뺏어갈 일이 가득했다. 운동을 하며, 피아노를 배우며, 책을 읽으며, 집을 꾸미며, 새로운 맛집을 찾아다니며, 사람들과 만나며, 스스로를 가꾸며, 나는 조금씩 행복을 채워가고 있다.

사실, 내가 2017년에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2017년에 얼마나 바빴는지에 대해 추억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항상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그 때 같이는 절대 다시 못 산다”였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이 꽤나 즐거웠던 것은 사실이고,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했지만, 분명 그 해의 노력은 과제와 스스로에게 부여한 의무감으로 가득한 상황에서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뒤쳐졌다는 초조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완벽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내 성격도 아직 어디 가지 않았다. 학교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정말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가 한탄한다. 나는 여전히 주말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공부한다. 하지만, 밤을 새면서까지 공부하지는 않는다. 그러지 않는 편이 나는 좀 더 행복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