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2019.05.01.

2019-05-01

# 1.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진로 고민을 한 이후로, 나는 내가 인생을 잘 살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노력한 편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이 노력은 구체적으로 2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정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러한 삶의 형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첫 번째 스스로에 대한 깊은 고찰과 이해를, 두 번째 단계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와 의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 수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내가 살면서 해왔던 고민의 큰 맥락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 진로에 대한 고민 -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내 삶의 가장 큰 고민이자 유일한 고민이었다. 이 고민은 긴 방황 끝에 내 적성에 거의 완벽히 들어맞는 전산학부에 안착함으로써 끝이 났다.
  • 개발자로서 성장에 대한 고민 - 대학교 2학년 말 개발을 처음 접한 이후로 계속적으로 하고 있는 고민이다. 내가 개발자를 은퇴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고민이다.

# 2.

그리고 최근, 여기에 한 가지가 추가되었다. 내가 가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나 나는 하고 싶은 일이 가득했고, 내 인생은 언제나 무언가로 가득 차있었다. 그것이 새터 기획이든, 즐거운 대학생활 기획이든, HCI 연구든, 개발 공부든, 다 같이 서비스를 구현하는 일이든, 아니면 친구들과 밤새 술을 먹고 떠들고 게임을 하는 일이든 말이다. 오히려 시간이 부족해서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나는 내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잃었다. 내가 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악착같이 발버둥치며 붙잡게 되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퇴근이라는 삶의 형태를 접한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놀던 초등학교 때도, 밤을 새며 열심히 영재고 준비를 했던 중학교 때도, 기숙사 생활을 했던 고등학교 및 대학교 시절에도 퇴근은 없었다. 언제나 자기 전까지 할 일이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하지만 직장인의 생활에는 회사의 모든 것과 나를 격리시키는 퇴근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내가 혼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나는 극히 내향적인 성격이라 혼자인 시간을 필요로 하고 또 좋아하지만, 많은 시간을 무조건적으로 혼자 보내야 하는 상황은 다른 이야기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전에 남아있었고, 서울에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은 낯가림의 끝판왕인 내 성격상 너무 어려웠다. 나는 강제로 매일 4시간씩 혼자가 되어야 했고, 주말에는 더욱 긴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다.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배워야만 했고, 또 이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요즘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이 외로움에 적응한 듯하다. 요즘 나는 유튜브와 운동에 빠져있다. 매일 회사에서 저녁 먹으면서 약간 늦게 퇴근 → 운동하면서 유튜브 보기 → 가끔 맥주 먹으면서 영화보기의 패턴을 보내고 있다. 여담으로 나는 원래 유튜브는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고 거들떠도 보지 않았는데, 요즘은 하루 종일 유튜브와 함께한다. 새로운 컨텐츠가 끝도 없이 생겨나는 유튜브는 역사상 그 어느 SNS보다 자극적이어서 무료한 매일을 달래주기에 딱이었다. 돈의 여유가 생기면 피아노도 배워볼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이러한 삶의 형태에 대한 회의감을 머리 한 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다. 나는 내가 현재의 편안함이나 즐거움보다는,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하는 데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과 같은 삶의 형태는 단지 무던히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체념하고 익숙해지는 것이지, 시간을 내 의지대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불만이 구체화 된 것은 바로 오늘,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학생이자 군인이지만 근로자이기도 한 나는 회사를 쉬게 되었다. 이 휴일을 어떻게 사용할까 그 전날부터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결국 서점에 와서 시원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내가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하고 책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졌다. 내가 마음껏 쓸 수 있는 16시간이 생겼는데,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뭘 할지 고민하고, 결국 내가 가진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제일 괜찮은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참 서글펐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이런 빈 시간이 생겼을 때 주저없이 택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 넘어서서,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빈 시간이 생길 틈이 없는 나를 원한다.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런 가득 차있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고, 그렇지 못한 삶의 형태에 있어서 불만족을 넘어서서 분노를 느껴왔다.

# 3.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을 기록하기 위함도 있는데, 또 다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이 명확히 정리되고 정확히 문제가 되는 포인트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오늘 글을 쓰며 든 생각 중 하나는 내가 직장인이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직장인의 삶이라는 틀에 나를 끼워맞추려고 하다 보니 삐져나오는 부분이나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 것이 아닐까.

두 번째는 회사 일에 내가 몰입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내가 클라썸에서, 동아리 활동에서, 또는 학교의 팀프로젝트에 몰입했을 때와 일의 종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퇴근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밤을 새며 몰입할 수 없는 환경인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또한 내 능력이 부족하여 프로젝트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고 프로젝트의 일부분조차 버거워하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격리된 환경이 확실히 문제라고 느꼈다. 이들과 함께 일상을 나눌 수 있었으면 외롭다는 감정을 훨씬 덜 느꼈을 것이다.

한동안은 시간과 타협한 삶을 살아가면서 고민을 계속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접하고, 이에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것은 언젠가 한 번쯤은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갈 것이다.